-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학급 운영 이야기(1) 자리 경매를 통한 자리 선정
담임 교사들이라면 학급을 운영할 때 누구나 고민할만한 주제가 있다. 바로 자리 배치이다.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창시절 때 자리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신경을 설령 안 쓰더라도 맘에 드는 짝과 옆자리에 앉게 되면 누구나 기뻤을 것이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자리는 매우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실제로 아이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로 자리 선정이다. 이는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편하면서도 신경 안쓰는 방법은 그냥 번호순(?)대로 앉히는 것이겠지만, 그랬다가는 아이들의 원성을 듣는 시대이다. 앞에서는 뭐라하지 않겠지만 뒤에서는 반 아이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웬만하면 번호순서대로 앉히는 것은 지양하도록 하자. 교사가 편할수록 아이들은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리를 배치하는 것이 좋을까?
교직 생활한지 겨우 3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첫 해부터 자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자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학급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소위 노는 아이들을 뒷 자리에 앉혀놓으면 교실 분위기가 개판이 된다는 것을 학창시절 때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자리를 랜덤으로 앉히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침에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뽑아서 그대로 자리에 앉히는 방식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리를 많이 선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식은 장점이 매우 뚜렷하다. 랜덤으로 뽑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딱히 반발이 없다. 왜냐면 자기 운이니까. 교사도 준비하기에 수월하다. 번호표 인쇄해서 종이만 오리면 끝이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고민을 하지 않는 제도는 그만큼의 단점이 생기기 마련. 랜덤으로 자리를 뽑는 제도의 단점도 있다. 앞 좌석으로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이 뒷 자석에 걸린다든가, 사이가 안 좋은 친구들이 근처에 걸릴 수도 있다. 아이들 또한 자리를 위해서 무언가 절실히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몇몇 아이들을 배려하자니 역차별 논란이 생기기 딱 좋다. 요즘 세대는 무엇보다 공정에 민감하다. 물론 정말 시력이 안 좋다든가 하는 친구들은 배려를 해줘야한다. 학교는 그러한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주는 곳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러한 배려의 범위에 대한 문제도 생길 것이다. 어디까지 배려를 해 줄 것인가? 말이다. 시력이 -3.0까지는 배려를 해 줘야 하는가? 아니면 -4.0? 또한 만약 그 반에서 5~6명이 눈이 안 좋아서 다 앞자리를 선호한다면 이들도 다 배려를 해줘야 하는가?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나는 다음 제도를 선택하기로 한다.
학급 자리를 경매 시스템으로 뽑는다.
경매장에서 물건을 경매하듯이 자리도 경매로 뽑는 방식이 불현듯 생각났다. 아마도 교사 부임 첫 해에 1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반의 회장과 부회장에게 이 시스템에 대해 얘기를 해 보았고, 다들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를 자리 운영에 써먹어보기로 했다.
경매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실제로 돈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매 포인트를 만들기로 했다. 경매 포인트는 학급 생활의 성실도와 연관지어서 부여하기로 했다. 일종의 상/벌점 제도인 셈이다.
일주일동안 지각 안하면 5포인트, 기타 과제물을 제때 제출하면 1포인트 등등.. 반대로 지각하면 포인트를 차감하기로 했다.
한 번 아이디어가 나오니 여기저기로 확장되었다. 뒤 편에서 언급하겠지만 학급 내에서 게임을 실시하면 게임 활약도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기도 했으며, 다른 선생님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고 싸인을 받으면 그 갯수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하기도 했다. 모든 요소들에 포인트를 걸 때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를 쓰고 열심히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매진했다.
그렇게 모은 포인트를 가지고 아이들이 정한 자리 바꾸는 기간(2주 또는 3주에 한 번)이 되면 시간을 내서 경매를 실시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경매의 룰이다.
자리 경매의 룰과 진행 방식
경매는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입찰 방식에 따라 공개 입찰 경매와 비공개 입찰 경매로 나뉜다.
공개 입찰 경매는 말 그대로 가격이 공개적으로 실시간으로 불리고,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경매 방식이다.
비공개 입찰 경매는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가격을 적고 이를 담당자에게 전송한 다음,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사람이 물건을 가져가는 경매 방식이다. 보통 부동산 경매가 비공개 입찰로 진행이 된다.
자리 경매도 당연히 두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최소 포인트부터 시작해서 가장 높은 포인트를 부른 친구가 가져가는 공개 입찰 방식, 그리고 해당 자리를 원하는 친구들만 참여한 다음 여기서 비공개 입찰로 가장 높은 포인트를 써낸 친구가 가져가는 방식. 전자는 포인트가 많은 친구들이 포인트로 깔아뭉갤 수 있으며, 후자는 포인트가 적더라도 상대방이 얼마를 써낼지 모르니 상대적으로 적은 친구들도 해볼만하다.
나는 전자와 후자를 병행했지만, 후자를 좀 더 선호했다. 전자는 포인트가 높은 친구와 상대하는 순간이 되면 아이들의 포인트가 잘 소모가 안되는 단점이 있었다. 반대로 후자는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포인트를 쓰는 경우가 있어서 포인트 소모가 (상대적으로) 잘 되었다.
경매를 위해서 최소 포인트(나는 아이들의 포인트 현황에 따라서 5~15포인트 정도로 두었다)를 설정했다. 즉, 단수 입찰로 들어오더라도 최소 이 정도를 소모해야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포인트이다.
그 다음으로는 엑셀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다. 수작업으로 엑셀을 만들어서 운영했는데 그 틀은 아래와 같다.
자리 경매에 사용한 엑셀 파일
노력 없이는 되는 게 없다. 항목을 만들고 그 항목에 따라 아이들이 얻은 포인트를 일일이 기록했다. 그리고 아래의 엑셀을 이용하여 실제로 경매를 진행했다.
얻은 포인트를 위 엑셀에 복사를 하고, 옆에는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자리를 볼 수 있도록 자리 칸에 번호를 붙여서 만들어놨다.
진행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내가 번호표를 랜덤으로 섞어서 하나씩 뽑으면 그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해당 자리에 참여할 의사가 있으면 손을 들도록 한다. 이때 서로 눈치 보는걸 막기 위해서 바로 들지 않으면 바로 기회를 박탈시켰다.
만약 단수로 입찰에 참여하면 최소 포인트를 입력 후 해당 자리를 얻어 가도록 했고, 복수로 참여하면 종이를 나눠주고 비공개 입찰로 진행해서 포인트를 적게 한 다음, 가장 높은 친구가 가져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자리가 정해지면 선정된 자리에 누가 들어갔는지 바로 알 수 있도록 해당 번호를 지우고 아이의 이름을 입력했다.
자리 경매의 장점
이 자리 경매를 2년간 진행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장점이 존재했다.
첫 번째, 아이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앉을 수 있는 것이 이 제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선호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열심히 포인트를 모으기만 한다면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가 공정하다고 느끼는 방식이었다. 요즘 세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에 무엇보다 부합하는 제도가 아닌가 싶다.
두 번째, 학급 분위기나 생활 태도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의 가장 핵심적인 장점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생활 태도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각을 하면 포인트가 팍팍 깎인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줄 수 있었으며, 수업 개선과 관련해서 포인트를 걸면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학교 생활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셈이다. 교사가 어떤 활동까지 포인트를 거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으나,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큰 유인책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이 제도를 시행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세 번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참신한 방식이다.
많은 교사들이 자리를 랜덤으로만 뽑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매우 적합한 제도이다. 참신하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자리 경매의 단점
하지만 단점도 장점 못지않게 뚜렷한 제도이다.
첫 번째, 교사가 매우 귀찮다.
일일이 포인트를 입력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것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경매는 20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종례 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창체 시간을 이용하거나, 내 수업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다. 시간이 걸린다는 점은 아마 가장 큰 문제로 남을 것이다.
두 번째, 포인트가 적더라도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를 자신이 선호한다면 큰 문제 없이 무혈 입성이 가능하다.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맨 앞자리 또는 중간 자리를 선호하기 때문에 뒷자리를 원하는 친구들은 딱히 포인트가 없더라도 단수 입찰에 적은 포인트로 무혈 입성이 가능하다. 그래서 경매의 최소 포인트를 두었지만, 이것을 너무 올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어쩔 수 없는 문제 같기도 하다.
세 번째, 생각보다 단수 입찰이 많다.
아이들이 사전에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생각보다 복수 입찰이 많지는 않았다. 누군가 먼저 이 자리를 선호한다고 밝히면 그 자리로 잘 안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나마 여기는 공학이라 남녀가 자리를 놓고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단성 학교의 경우에는 서열이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제도를 쓰기가 부적합할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남자 학교).
네 번째, 자리의 고착화가 심해진다.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 네번째였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자리는 물론, 그 선호하는 자리 주변으로 선호하는 친구들을 끌어 모았다. 알게 모르게 자리를 찜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한 학기 내내 비슷한 자리만 앉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이를 막기 위해 같은 자리를 연속으로 앉지 못하도록 제도를 마련했지만, 바로 옆 자리랑 바꿔버리는 편법(?)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반 아이들이 친한 애들끼리만 친해지는 현상이 좀 심해지기도 했다. 특히 2년차에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었다.
고민 끝에 나는 중간중간 자리를 그냥 랜덤으로 섞기로 했다. 2학기가 한창 지난 다음에 낸 조치였기에 이미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냥 실시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 4번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리 경매 시스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 볼 예정이다. 없애기에는 너무 아깝고 잘 만든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자리 경매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실시하거나, 중간중간 자리를 랜덤으로 섞는 방식 등이 있겠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도 있을 것이다.
고작 단점 하나 때문에 이 제도를 없앨 수는 없다. 자동차 사고 났다고 자동차를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들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자리 경매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도 추천드린다(또는 이것과 비슷하게 하거나). 교사는 좀 귀찮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질뿐더러 하나의 큰 동기유인으로 다가가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교사가 귀찮게 노력해야 아이들에게는 더 의미있게 다가간다. 교사가 가만히 있으면 아이들도 변하는 게 없다.
* 이 글이 언제 검색창에 뜰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엑셀 파일이 필요한 교사분들이 있다면, 댓글로 메일 남겨주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