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일상] - 점심 시간 라디오 DJ 운영

 온라인 클래스 원격 수업 라디오 DJ 운영


코로나로 온라인수업이 한창이던 2021년, 아이들을 못 보는 것 만큼이나 큰 고역은 도대체 진도 다 끝나고 남는 시간에 줌으로 뭘 해야하나 였다. 


물론 코로나가 많이 잠잠해져서 실내 마스크 해제를 하루 앞으로 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동안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도록 했던 교육부의 대책은 정말 한심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것만으로도 글 몇 개는 쓸 수 있겠으나 지금 그런 것은 의미가 없고 아무튼! 


줌으로 뭘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시간 때우기(!)용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라디오였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정말 번뜩이는 아이디어 였던 것 같다(자화자찬).




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하여 사연을 받도록 한 다음 줌 켜서 배경끄고 진짜 라디오처럼 사연 읽어주고 음악 틀고 하면서 운영을 했다. 나름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도 준비해서 읽어주고 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보낸 사연들이다. 이건 아마도 2022년 초반에 한 번 온라인 수업을 해야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았던 사연들 같다.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사연들을 많이 보내줬고 나도 정성스레 읽어주고 재밌는 멘트와 함께 진행을 했었다. 라디오 한 번 하면 45분이 짧게 느껴질정도로 금방 지나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아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평소에 상담이나 대화를 통해서는 절대 듣기 힘든 시시콜콜하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들이 팡팡 튀어나왔다. 


이별을 슬퍼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아이에게 말을 걸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회장 선거 출마를 고민하기도 하고,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솔크에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하고, 커플이 와서 자랑하기도 하고, 진로 고민을 하기도 하고, 짝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사는게 어렵고 힘들다고 푸념을 하기도 하고, 내 팬클럽(?)들이 애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난 때로는 온 힘을 다해, 때로는 가볍게 조언을 해주면서 사연을 같이 즐기고 공유했다. 아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언제나 재밌었다. 원격 수업은 너무너무 싫었지만 이 라디오를 하는 순간만큼은 매우 재밌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플랫폼은 익명이다. 그런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한 덕분에 아마도 더 많은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든다(물론 어떤 사연들은 익명인데익명같지 않기도 하지만..ㅎㅎ).





그리고 가끔씩 라디오를 너무 많이 진행하면 사연이 모자라고 힘이 부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게스트를 초빙하기도 했다. 주로 나랑 친한 선생님들을 모셔왔는데 해당 반 담임선생님 또는 비교과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그러면 또 그 나름대로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초대받은 선생님들도 신선해하고 아이들과 소통을 하면서 큰 재미를 느꼈었다.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 




그리고 뭔가 게스트를 모셔서 하면 나도 편한 느낌이 있었다. 혼자 하면 사운드가 비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되서.. 한편으로는 게스트를 부각시키고 빛내주는 것이 참 쉬우면서도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네이밍 센스가 좀 중요했는데 내 근무지 학교 + 운수 좋은 날을 합성해서 '신수 좋은 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DJ정은 고3 시절부터 있었던 별명이었기에 그냥 갖다 붙였다.

네이밍을 나름(?) 잘 했다고 생각한다(자화자찬2). 



 

 학교 점심 시간 사연 라디오 DJ 운영


시간이 흐르고 흘러 원격 수업도 사라지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자 당연히 라디오를 할 일도 사라졌다. 나름 재밌는 컨텐츠였고 아이들도 좋아해서 나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는데 그게 사라지자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사실 종종 저녁이나 밤에도 그냥 아이들 모아서 라디오 한 적도 몇 번 있긴 했는데 힘들기도 했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걸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2학기가 어느 정도 지난 후 점심 시간에 운영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보통 이런 것들은 방송부의 소관이다. 그런데 나는 방송부 담당이 아니었다. 당연히 난관에 봉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참 기적적이게도 모든 것이 우호적으로 잘 돌아갔다. 




우선 방송부 부장을 담당하는 학생에게 먼저 이 아이디어를 제안을 했는데 그때 이 학생이 너무나도 흔쾌히 응해줬다. 물론 꽤 친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하는 김에 공동으로 진행을 맡기로 했다. 이 친구의 적극적 의지 덕분에 이 친구가 나머지 부원들에게도 얘기를 잘 해줬다. 여기에 담당 선생님도 우호적이어서 생각보다 잘 풀릴 수 있게 되었다. 나머지 행정적인 부분을 담당해주셨으니까.  


결국 11월 즈음부터 매주 월요일 점심 시간에 라디오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매주 사연을 받아 대본을 쓰고 점심 시간에 진행을 했다. 나도 내가 직접 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서 바쁘지만 방송부 부장 친구와 꼬박꼬박 남아서 같이 대본을 썼다. 


이 학생에게 참 많이 고마웠다. 그때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불렀던 적도 많았는데 언제나 시간 내서 꾸준히 참여해줬기에. 아마 이 친구도 이걸 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많이 흐르더라도 기억에 남을 학생이다.


그리고 실제로 진행할 때도 호흡이 잘 맞았다. 가끔씩은 장난도 치고, 무슨 이상한 유행하는 말투도 하고, 나중에야 진짜 호흡이 척척 잘 맞을 때쯤 그만두게 되어서 아쉽긴 했지만.. 




또 혼자할 때랑 다르게 공동 MC로 하는게 부담도 좀 덜했다.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아무래도 혼자 하게 되면 사운드가 비는 것이 너무 부담이 된다. 이래저래 라디오 DJ들이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을 일일이 알 수는 없었으나 라디오를 한 번 할 때마다 꽤 많은 친구들이 관심 있게 들었던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가끔씩 결방하면 왜 결방하는지 묻기도 하고. 물론 나를 잘 모르는 1학년 친구들의 반응까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라디오 방송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준 방송부 친구들


보통 이런 것들은 방송부 학생들이 도맡아서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도 2022년에 한 번 했었다가 중간에 그만뒀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진행하는 꼴이 되었던 것 같은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연말에 일이 너무 많고 바빠서 몇 번 거른 적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이었다. 특히 2022년 마지막 방송 할 때 감회가 참 남달랐다.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회였을까. 






무엇보다 라디오를 한 번 진행하면 아이들의 고민과 이야깃거리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고 사연을 보내준, 그리고 들었던 아이들도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아주 유익한 콘텐츠가 라디오지 않나 싶다. 만약 좀 더 인프라가 발달된다면 더 라디오도 유연하게 재밌게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올해는.. 가능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늘이 도와준다면 또 할 수 있을지도. 안 되면 다른 방식을 찾아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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