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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경제학
'경제'라고 하면 보통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경제'라는 개념을 들으면 계산적이고 논리적이며 철두철미하고 빈틈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항상 매일경제 신문을 읽는 편인데 토요일마다 책을 추천해주는 지면이 있다. 그때 이 책이 눈에 밟혔다. 책의 부제가 '생명의 경제학'이란다. 생명의 경제학이 도대체 뭔 소리지?
내가 흔히 아는 경제의 개념과는 뭔가 다르다는 생각에 이 책을 중고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알고리즘과 개념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충격 그 자체를 안겨주었던 이 책에 대해서 이제부터 리뷰해보고자 한다.
경제학의 모순
경제가 최고로 삼는 목표는 무엇인가. 최소한의 재화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것이다.
생산기지의 배치부터 시작해서 노동자의 임금, 물류 체계, 환율 계산, 노동법과 정책 등 모든 부분에서 극한의 효율성을 고려하는 것이 경제가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경제학의 모습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뼈 없는 인간을 위한 무용학을 추론해 보자 ...(중략)... 멋드러진 장면이 연출 가능할 것이다. 공연 뒤에 체조 선수들의 몸에 다시 뼈대를 집어넣으면 그들의 신체에 일어날 여러 불편함에 대해서도 추론이 가능하다. 뼈 없는 인간을 위한 체조학이 추구하는 연역적 추론은 경이롭기까지 하고 그 결론은 참되나, 다만 실제적 적용이 도저히 불가능할 뿐이다. 현대 경제학 또한 이 체조학과 비슷한 바탕 위에 세워져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뼈 없는 인간이 아닌 뼈만 있고 영혼은 없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확고한 진보의 이론적 골격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뼈 없는 체조학을 연구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인간을 고려하지 않는 경제학도 말이 안 된다는 소리이다.
임금 협상이나 고용 개선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노사 갈등이 생기면 하나같이 이해관계와 대립관계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가 빵을 먹고 있으면 자녀들은 자신들도 달라고 보채겠지만, 자녀들이 빵을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허기진 배를 졸라매고 일터로 향할 것이다. 어머니와 자녀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반드시 적대적이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들이 빵을 두고 싸운 결과, 결국 가장 힘이 센 어머니가 자녀들로부터 빵을 쟁취하여 먹는다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경제학의 논리대로라면 당연히 어머니가 빵을 먹는 것이 맞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미 이 대목에서 (내 나름대로) 이 책의 잠정적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경제 활동도 결국 인간이 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경제학의 이론은 실전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인문학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부터 한 번 그 구체적인 내용을 따라가보자.
부의 개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학이란 부자가 되는 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방법을 따라하면 부자가 되고 아니면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부'라는 것은 무조건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화들이 가치를 지니려면 누군가는 그것이 없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천만원이 빛을 발휘하려면 누군가는 그 천만원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식으로 해석하면 다른 누군가는 가난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그렇다면 부를 축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공산주의가 맞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다. 부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불평등이 발생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다.
국가의 공정한 법치주의 질서 아래 형성되는 부의 불평등은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얻는 금전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나 다름 없기 때문에 불평등 속에서도 조화롭게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반면,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조화와 협력이 아닌 죄악과 불행과 폭력으로 불평등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또한 돈의 액수같은 물리적 수량이나 합법적 거래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의 관점에서 입각해서 보아야 한다.
예컨대 내가 빵을 팔았다고 쳐 보자. 누군가가 그 빵을 산다. 빵을 사는 사람은 재화를 구매하기 위해 돈을 지불했으며, 나는 돈을 받고 재화를 팔았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아무 문제가 없는 행동이다.
하지만 만약 그 빵을 산 사람이 사실은 당신이 예금해 놓은 은행을 약탈하러 가는 무장강도인데, 잠깐 들르는 길에 배고파서 빵을 산거라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지만, 기존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을 사항들이다.
부의 원천은 타인에 대한 지배력에 있다. 부를 통해서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 생각 말이다. 어쩌면 인간 자체가 하나의 부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길러내는 것이 가장 경제학에 부합하는 사업일지도..?
정의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우리는 회사든 뭐든 누군가에게 고용되어서 일을 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의 약속이다. '내가 국가를 위해서 아이들을 하루에 8시간 교육하기로 했으니 국가는 나에게 임금을 달라' 라는 약속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정의는 무엇일까? 당연히 일한 만큼 주는 것이 정의이다. 더 나아가서 만약 추가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정의이다. 물론 요구하는 쪽이 더 웃돈을 얹어 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1:1 식의 등가교환이 어쨌든 정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은? 예를 들어서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일자리가 있다면 은근슬쩍 임금을 깎어버린다. 아니면 돈을 많이 주되 다른 일자리보다 엄청난 노동 강도를 제공하거나.
물론 합리적인 임금이 어느정도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반 매매와는 다르게(중고 거래를 생각해보자. 원가는 20만원도 안되는 코딱지 같은 스니커즈가 리셀가가 천만원이 넘게 치솟아도 살 사람은 사지 않는가?) 합리적 보수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적정선으로 놓고 임금을 정하는 것이다.
고용주 한 사람을 위해서 다수의 노동자가 불충분한 보수를 받고 일한다면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 상승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린다. 경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압력은 그 누구에게도 긍정적인 현상이 될 수 없음을 꼭 알아야 한다.
경제학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경제학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뭘까? 이를 위해서는 자본의 정의를 알 필요가 있다. 자본이란 2차적으로 파생되어 나오는 물품의 원료 물질이다. 즉 다른 물질을 생산해낼 때 자본은 의미를 지닌다. 즉 자본은 부의 원천이다. 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생산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인간의 만족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를 소비해서 생산한 물건을 얻어간다. 그러니 경제학의 주목적 또한 "양질의 소비 수단을 획득하고 풍성한 소비 활동을 이루는 것이다" 라고 정의내릴 수 있겠다.
생산물 또한 노동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니라 유용하게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다. 더 나아가서 생산이 소비의 주 목적이라면 소비의 주 목적은 당연히 생명의 유지이다. 그래서 국가도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까'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되고 '얼마나 많은 인구를 생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에 초점을 둔 경제학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오히려 "인구를 줄여야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와 같은 쓸데 없는 소리나 지껄일 뿐이다.
물건을 소비해서 생명을 유지한다면 그것이 훌륭한 소비이고, 그 반대라면 실패한 소비이다. 경제학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는 생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천국이나 유토피아 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을 나가며
서두에서 이 책은 '인문학적 경제'를 표방한다고 말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참 많이했다. 비록 경제를 전공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경제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아주 의미있는 고민인 것 같아서.
톨스토이가 쓴 소설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생각났다. 미카엘을 내쫓으려던 주인공의 행동에 당신 마음 속에는 하느님도 없냐면서 반대하던 그의 아내의 태도에서 러스킨의 경제학이 다시 한 번 부각되어보인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다 경제의 논리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노사갈등도 해결될 수 없고 리셀 시장의 높은 가격 현상도 설명될 수 없다.
희귀하면서도 사람들이 원하는 재화는 가격이 높아진다 라는 논리 그 자체에는 이미 희귀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문학적 사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니까. 누구보다 많은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 경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경제가 인문계열에 포함되어있는지를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경제학적 지식이 짧아서 제대로 못 느꼈을수도 있고 리뷰의 깊이도 낮다고 생각될 수 있겠으나 경제를 색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에 대해 신선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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