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서적 리뷰 6 - '바른 마음' by 조너선 하이트 jonathan haidt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최근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 양극단의 대립이 점점 더 심화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 진영을 거의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나도 한 쪽의 정치적 입장이 확고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반대편 진영의 입장도 고려하거나 이해해보기 위해 노력을 (가끔) 하고 있다. 물론 쉽진 않다.



그런데 굳이 정치가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상황이 너무나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세대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으며, 성별 갈등은 이미 신물이 날 지경이다. 특히 특정 성별이나 세대의 주장이나 입장을 굽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넷상에서도 꽤나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주장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것도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특히 중재하려는 시도만 있으면 '선민 의식'이니 뭐니 운운하면서 가불기를 걸기도 하고.. 선민 의식이라는 단어 사용하는 사람들 치고 자신들이 거기에서 자유로운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이렇게 심해진 극단적인 갈등, 이것을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장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 원인을 파악하면 해결책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리뷰할 '바른 마음'이라는 책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파고드는 책이다.




꽤 두꺼운 책이다ㅎㅎ



도덕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문제의 출발을 도덕성에서 찾고 있다. 흔히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하는 생각이 어디서 오느냐이다. 도덕은 선천적으로 생겨날수도, 후천적으로 생겨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저자는 도덕이 이성의 영역이냐, 감정의 영역이냐를 먼저 따져보고 있다. 


이 출발은 꽤나 의미가 있다.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도덕은 이성의 영역인가? 아니면 감정의 영역인가. 저자는 감정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서 그 근거를 뒷받침했는데 논리는 결국 하나다. 


바로 예시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나는 최근에 일어난 이태원 압사 사건을 예시로 들어 보겠다. 이번에 유족들이 서울광장에 이태원 압사사고 희생자 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설치했고 서울시는 불법이라고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누군가는 불법이니 잘못되었다라고 주장할 수 있고 누군가는 서울시가 그정도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상반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 서로가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면 이것은 이미 도덕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이때 평소 오세훈 서울시장이 마음에 안 들었던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이 사람은 오세훈이 마음에 안 드니까 분향소 설치 폐지론자들을 공격하고 싶지만 마냥 그렇게 하면 좀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이 오세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무언가 지적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왜 분향소 기습 설치가 옳다고 판단을 했는지 그 이유를 추론하는게 아니라 저 분향소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왜 찬성 편에 서서 우리처럼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셈이 된다.  




이 과정을 잘 생각해보면 분향소 설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앞서는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내가 느낀 감정이 먼저 앞서고 이성은 그 감정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뒷받침해주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감정과 이성의 관계를 '기수와 코끼리'에 비유하고 있다. 코끼리는 감정과 직관이고 기수는 이유를 찾는 합리적 추론, 즉 이성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마치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와 같다. 고객이 어떻게 가자고 하면 변호사는 그 방향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을 뿐이니까. 물론 때로는 변호사가 다른 방향성을 찾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고객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직관이 먼저이고, 추론(이성)은 다음이다 라는 이 대명제는 저자가 말하는 첫 번째 도덕심리학의 원칙이다. 직관이 중요한 것은 이제 알겠는데, 그럼 직관이 뭔데? 저자는 이제 직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직관이란 무엇인가



도덕적, 즉 직관적으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무엇을 고려해서 판단을 할까?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라 함은 타인에 대해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하고, 무엇인가를 공평하게 추구하는 것을 도덕의 가치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이건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직관의 후보 요인으로 무려 5가지를 꼽고 있다. 배려, 공평성, 충성심, 권위, 고귀함. 이 5가지를 모두 고려하여 우리는 도덕적 직관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5가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현이 될까?  



첫 번째 배려의 경우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예를들어 채식주의자는 동물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행동과 관련이 있다. 우크라이나 반전 운동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보수진영의 경우는 주로 국민과 집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배려한다. 가령 6.25 참전용사나 월남 참전용사들을 지원하는 식으로 말이다. 


두 번째 공평성과 부정의 경우 모두가 공평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발동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좌파의 경우 공평이라는 것이 평등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우파는 비례의 원칙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참여한만큼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세 번째 충성심의 경우 말 그대로 무언가에 대해 충성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그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쉬운데, 어떤 집단이나 관계에 충성할수록 이를 배신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해진다. 우리가 배신자에 대해서 큰 실망감을 가지는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이 강력한 기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철새 정치인들을 우리가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네 번째 권위의 경우 위계질서의 패턴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어떤 위계질서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도부에 권위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 권위가 깨진다는 것은 곧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가 그 권위를 무너뜨리는가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도덕적 판단의 잣대가 될 만한 요소인 것이다.


다섯 번째, 고귀함의 경우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을 추하게 여기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인류의 발전 과정을 놓고 봤을 때 고귀함과 추함의 구분은 식량에서 시작되었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고귀함과 추함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의 여러 영역으로 확장해나간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진보는 주로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보수는 새로움에 혐오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상 5가지가 직관의 영역이다.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기준들에 따라서 사람들이 너무도 편이 쉽게 갈리는 것을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편이 갈리는 순간 우리는 싸우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편을 갈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집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집단과 도덕 


뒤에 챕터에서는 왜 인간이 집단에 종속되는가, 그리고 그 집단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활약하는가 등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그런 부분은 사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해서 생략하도록 하고 마지막 장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 심리에 대한 부분을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좌파와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사실은 유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누군가가 좌파라면 그것은 좌파의 DNA가 뇌에 이식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태어난 순간부터 고착화되어있다는 것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해 나간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가 그리는 장대한 서사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그 길을 걷게 된다. 좌파의 경우 기득권과 지배계층은 늘 불공정한 지배를 해왔지만 여기에 맞서 싸운 인간의 고귀한 열망이 마침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현대 사회를 이끌어 냈노라고. 반대로 우파의 경우 자유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여러 시도들, 이 사회의 공정을 무너뜨리는 음해 세력의 공격에서 맞서 싸워서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어떠한 애국적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야한다는 것 말이다. 


서로 지향하는 서사가 다른데 어찌 이들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도덕은 그렇게 우리를 눈 멀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편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리뷰를 마치며 



사실 이 책의 결론, 즉 DNA나 도덕 매트릭스 운운하면서 그것이 달라서 사람들의 직관도 다르다라는 결론은 그렇게 썩 개운한 결론은 아니었다. 그러면 세상 만사를 분석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다 유전자 탓이지 뭐.


그래도 여러가지 생각을 안겨주는 책이다. 이 책이 씌여진지 10년이 지났지만 갈등과 대립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미국도 트럼프가 등장한 이후로 좌우 대립과 집단 갈등이 점점 더 격화되고 심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몹쓸 짓을 한 대통령으로 아마 후대에 길이길이 기록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별반 다를바는 없다. 물론 이 문제의 시발점을 특정 정부에 전가할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 흐름의 관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특정 진영이나 특정 정부의 문제로 치환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누구의 탓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정말 도덕적 추론의 과정에서 직관이 이성을 앞선다면 사실 DNA가 결정에 큰 영향을 가지게 된다는 저자의 서사가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물론 그런 결론을 가정해놓고 정한 논지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직관을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서로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면서 진흙탕 토론을 펼치는 것 또한 볼썽사납다. 게다가 사람이란 동물은 자신의 논리가 간파당하면 간파당할수록 주장을 굽히기보다는 더욱 더 자신의 신념을 강화시키는 편이다. 이준석이 뛰어난 언변으로 진보 진영의 스피커들을 논리적으로 무너뜨렸다고 해서 진보 진영에서 보수 진영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보수 진영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상대방 진영의 이념을 바꾸는 것은 아마도 힘들 것이다. 



반대로 유시민 같은 진보 논객이 보수 진영의 스피커들을 물리쳤다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이준석이나 유시민의 논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이 옳고 그름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을 하다보면 분배를 최우선으로 논해야 할 수도 있고, 성장을 최우선으로 논해야 할 수도 있다. 적절한 선을 타는 것이 정부 관료들이 취해야 할 태도겠지만 안타깝게도 조금만 분배를 강조해도 질알질알, 조금만 성장을 강조해도 질알질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분배와 성장이 결코 상반된 개념이 아니고 국가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마땅히 양립하면서 발전해나가야 할 요소인 것처럼, 좌파와 우파 또한 정치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받쳐주어야 할 요소이다. 



그러나 정치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워낙 많다보니 현실은 여전히 시궁창일 뿐이다. 뭐 당장 나조차도 상대방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진 않다. 그나마 중도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 괜찮지만 상대방 진영의 강경파들을 대할 때는 더더욱 쉽지 않다. 



저자의 결론에 따르면 인간이 정치적으로 니편 내편 갈라 싸우는 이유는 집단적 올바름을 추구하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태생부터 집단과 함께했고 앞으로도 집단과 함께할 것이다. 그 집단이 옳은 집단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집단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지만 곧 그 집단을 선택한 나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니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게 바로 내 마음 속의 코끼리니까.


그러니 아득바득 우기는 상대방을 보면 크게 화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저 저 사람 마음 속의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솔직히 나는 그 정도로 초월하고 달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이상향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그 이상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아무튼 찝찝하긴 하나 그래도 큰 깨달음을 얻고 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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