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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뽑아야 사는 남자의 이야기
오늘 리뷰해볼 책은 소설책이다. 독서 모임에서 계속 비문학 분야의 책만 읽다가 한 번쯤은 소설을 읽어보자고 해서 서로 소설책을 추천하고 그 중에서 바꿔서 읽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다른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 바로 '허삼관 매혈기'이다.
배경 지식
사실 평소에 문학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그렇다고 비문학도 많이 읽는 건 아니다) 걱정이 됐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이 책은 나의 전공 분야인 역사와 아주 관련이 없는 책이 아니었다.
중국인 작가 위화가 쓴 이 책은 1950년대 중국이 자행한 희대의 삽질인 대약진운동과, 1960년대 광기의 폭풍으로 중국을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굳이 설명을 보태자면 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마오쩌둥이 주도해서 발생했던 중국 일대의 대변혁적인 사건이다.
당시 중국 내에서 마오쩌둥의 위치는 상당히 위태위태했다. 기존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권위는 추락했으며 등소평, 유소기를 비롯한 일명 '주자파'의 반격으로 정치적 입지까지 추좁아진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재기와 반격을 위해서 일으킨 운동이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이 문화대혁명의 결과는 매우 처참했다. 수많은 문화재를 중국인 손으로 부숴버린 것은 물론이고, 마오쩌둥에 반대하는 세력은 철저한 사상 검증을 실시하면서 조리돌림하고 침뱉기와 같은 모욕적인 언행도 서슴치 않았다. 지금이야 공산당이 계속 집권하고 있으니까 문화대혁명도 (중국 내부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중국 내부에서도) 중국의 저급한 민낯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싶다.
위화가 쓴 '허삼관 매혈기'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물론 위 사건을 모르더라도 이 소설을 읽는데는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알고 보면 더 재밌는 소설인 만큼 간략하게 언급을 해보았다.
줄거리
시골에 사는 청년 허삼관은 생사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료들이 피를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피를 팔러 가게 된다. 난생 처음 피를 팔아 큰 돈을 거머쥐게 된 허삼관은 이 돈으로 허옥란이라는 여자와 결혼할 결심을 하게 된다. 허옥란은 원래 하소용이라는 남자와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허삼관이 허옥란의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마침내 결혼을 해서 아이를 셋 낳게 된다.
그러나 뜻 밖에도 첫 번째 아이가 점점 하소용을 닮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알고 보니 허옥란은 불륜을 저지른 것이었다. 첫 번째 아이인 허일락은 사실 하소용의 아이였다(갑자기 막장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이 사실을 알고 분개한 허삼관은 이를 이용해서 허옥란을 부려먹는 상황까지 연출한다.
그러던 어느 날 허일락이 친한 동료였던 이웃집 방씨의 아들을 패서 반 죽여놓는다.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물게 된 허삼관은 처음에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소용에게 이 문제를 떠넘겼지만, 결국 자기 집 물건이 전부 방씨에게 압류당하게 되자 자신의 피를 팔아서 병원비를 물어낸다. 허옥란은 예전부터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돈 버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기 때문에 이를 뭐라 했지만 돈이 없어서 결국 꿍하게 넘어간다.
그런데 그 사이 허삼관은 임분방이라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자와 정분이 나서 관계를 가져 버렸다. 이것이 들키면서 허삼관이 되레 허옥란에게 책 잡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편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쳐 가던 시기였다. 식사를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에 허삼관네 집은 집안 식기와 식재료를 모두 빼앗기고 공동으로 식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결국 엄청난 가뭄이 찾아오게 된다. 허삼관네는 그동안 숨겨놓은 식량으로 잘 버텼지만, 결국 가난에 처하고 만다.
옥수수죽만 먹으면서 산지 두 달. 결국 허삼관은 다시 피를 팔러 가게 된다. 그리고 간만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데 그 와중에 예전에 사고쳤던 일락이는 제외가 된다. 일락이가 가출을 했고, 결국 허삼관이 다시 찾아서 국수를 멕인다.
그 외에도 중간에 하소용이 죽을 뻔한 위기에 놓일 때 아들의 주문이 필요하다고 해서 허일락이 결국 찾아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 허삼관이 자신의 친아들이 허일락이라고 선언을 하기도 한다. 또 문화대혁명 때 허옥란이 반동분자로 몰리게 되자 가족들이 허옥란의 죄를 낱낱이 파헤치는 촌극이 펼쳐지기도 한다(이때 예전 불륜 얘기를 꺼냄).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자식들도 이제 출가해서 살게 된다. 허삼락이 출가할 때 돈을 주기 위해 허삼관은 피를 또 팔게 된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허이락이 일하는 곳에서 생산대장이 찾아온다. 대접을 잘 해야 허이락에게도 이득이 되는 상황이었는데, 돈이 없으니 허삼관은 어렵사리 또 피를 팔게 된다.
그 이후 몇 달뒤, 이번에는 일락이가 병으로 쓰러진다. 그런데 돈은 없는 상황. 허삼관은 이웃들에게 돈이란 돈은 다 빌리지만 모자라게 되자 다시 피를 팔러 나간다. 그러나 동네 혈두(피 사주는 사람)는 몇 달 전에도 연달아 오지 않았냐며, 이러면 죽는다고 거절하고 대신 다른 동네를 찾아가보라고 권한다.
허삼관은 결국 피 팔이 원정에 떠나게 된다. 불과 열흘 만에 세 번이나 피를 뽑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허삼관(그래서 한 번은 다시 피를 주입했기 때문에 사실상 두 번이었다). 그 사이 뱃사공 일을 하는 누이들을 만나서 피 팔아서 돈 버는 법을 가르쳐주고, 이들이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 대가로 피를 팔아서 번 돈 일부를 허삼관에게 주게 되었고, 허삼관은 보름 만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울고 만다.
시간이 한참 흘러 허삼관도 돈 걱정 없이 살게 되지만 늙었다고 피 파는 걸 거부당하자 주저앉아 울고 마는데 이를 아내인 허옥란이 다독여주는 장면을 끝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나의 생각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나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부적인 묘사도 매우 생생하고 흥미진진하지만, 그런 것보다 이목을 끈 것은 ‘휴머니즘’적인 모습이다.
첫째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일락이를 문전박대하지만 결국 국수가 먹고 싶어 가출한 첫째를 데리고 국수집으로 데려가는 대목, 서로 불륜을 한 번씩 공평하게 저지르는 모습, 원래는 세 달에 한번 피를 뽑아야 하지만 아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3일에 한 번씩 피를 뽑는 허삼관의 모습,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굶어죽기 직전에 놓이게 된 두 달간의 고난의 시간 등이 참으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인간다운 이야기이고, 아득바득 살아가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잘 드러나있다. 큰 의미가 있진 않지만 그저 인간의 스토리라고 생각한다면 납득이 갈만한 이야기들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읽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참 이해가 안 되는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대혁명은 역시 거지 같은 혁명이다.
진짜 나의 생각
사실 허삼관이 좀 부럽기도 했다. 왜냐면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목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피를 팔면 꽤나 거금이 들어왔다. 한 번 팔 때마다 35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해서 얼마일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몇 백만원 정도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새삼 오늘날이 떠오른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한 학기 당 봉사활동을 15시간을 채워야했었다. 그때 가장 일반적으로 처리했던 방식이 바로 헌혈이었다. 헌혈하면 15시간 봉사활동도 채워주고 간식도 주고 영화티켓도 줬다. 그래서 적지 않은 친구들이 헌혈을 했던 기억이 남는다.
그런데 이 허삼관 시절과 비교하면 피값이 똥값인 된 것 같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만약 오늘날 피를 팔아서 몇 백만원 정도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헌혈하러 오는 사람들이 불 나도록 서 있지 않을까? 큰 위험과 리스크를 걸어야 목돈을 벌 수 있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리 피 한 번 팔면 목돈이 생긴다니.. 그냥 엄청 부럽다.
간혹 신문 기사를 읽다 보면 피가 모자라네 뭐네 하는데 결국 돈이면 다 해결되는 일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읽은 책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이어서 포스팅해봐야겠다. 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인가?
아무튼 소설 리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소설은 솔직히 말하면 줄거리 보는 것보다 직접 읽는 것이 훨씬 낫다. 흡입력도 좋고 제법 술술 읽히는 책이니까 독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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